늘 가던 단골 카페가 있었다. 분위기도 좋았지만 특히 커피 맛이 무척이나 좋았다.
나이가 들면서 차가운 라떼를 먹으면 배가 아프고 컨디션이 떨어지는 체질이 되어서
더이상 커피를 마시기 힘들어서 우울했는데 단골 카페는 이상하게 그런 부작용이 없었다.
그래서 늘 주말마다 단골카페에 가서 땅콩 크림 라떼에 얼음 두 개를 넣어서 디카페인으로 마셨다.
주말마다 이 단골 카페에서 땅콩 크림 라떼를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읽는게 주말의 작지만 큰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때처럼 방문한 단골 카페는 분명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들어서는 순간 뭔가가 달랐다.
동그란 낯선 안경 쓴, 카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르는 사람이 카운터에 서 있었다.
아마도 사장님이 바뀐 모양이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늘 먹던 땅콩 크림 라떼를 시켰다.
사장님은 당연히 내 단골 커피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번 설명했다.
드디어 커피가 나왔다. 하지만 늘 마시던 땅콩 크림 커피와는 모양부터 달랐다.
잔 위를 가득 덮던 하얀 구름 같은 크림은 온데간데없고, 이 커피는 어딘가 축 처지고 맥이 빠진 얼굴모양이었다.
한 모금 마셔보았다. 역시나, 맛도 달랐다. 예전엔 입술에 닿자마자 부드럽게 녹아내리던 그 고소한 땅콩크림의 맛,
한 모금마다 달콤하게 혀끝을 간질이던 그 땅콩 향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밍밍한 커피 아래,
힘없이 가라앉은 크림이 겨우 흔적만 남긴 채 떠돌고 있었다.
이커피를 보고있으니, 구룸처럼 몽글몽글하던 기쁨이란 크림이 천천히 가라앉아버린 하루 같았다.
그래서 더 쓸쓸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땅콩크림은 어디 갔어요?”
사장님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아직 초보라서요… 아마도 아래 가라앉아 있을 거에요.” 죄송합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아, 이렇게 나의 사랑하던 단골 카페도 안녕이구나.”
하지만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의리와 인내심을 가지고 여러 번 재 방문 했지만 내가 그리워하던 커피 맛은 실종되어
도저히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맛이 바뀌고,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사장의 태도에서 신뢰가 무너지자 나는 자연스럽게 “이제는 안녕이구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골 카페의 변질은 단순한 커피 한 잔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어떤 나만의 기준의 무너짐이었다.
나는 인기 있고 유행하는 커피샵들을 매번 찾아다니기보다는 (예전에는 무지하게 이런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지쳤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피곤해서 그런지 마음에 드는 가까운 피커숍을 정하고 꾸준히 그곳만을 이용하는 편이다.
물론 단골 커피숍을 만드는 나만의 기준이 있기는하다. 당연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첫번째 기준은 커피 맛이다.
땅콩크림라떼와 바닐라 라떼의 맛은.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진하고 고소해야 한다. 이부분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리고 나는 커피에 수준높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두 번째는 카페의 인테리어다.
너무 화려하거나 유행을 따르는 인테리어는 싫다. 처음에는 심심하지만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편안한 인테리어 공간이 좋다.
세 번째는 음악이다. 쿵쾅거리거나 시끄러운 댄스 음악은 사양이다.
조용한 재즈나 시티팝, 프렌치팝 등 공간과 어울리는 무드의 노래와 또는 사장님의 취향이 강하게 묻어 나는 그런 선곡이 좋다.
네 번째는 사장님의 옷차림이다. 카페의 공간과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이 좋다.
사장님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옷 스타일이라면 이상하게도 커피 맛도 신뢰가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람이 너무 붐비는 대형 카페는 피한다.
가서 독서하고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
당연히도 이 다섯 가지를 모두 만족 시키는 곳은 정말 드물다. 그래서 단골 카페를 잃고 나서 한동안
방황하며 나의 마음에 안식처를 제공할 카페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런데 우연히, 그 곳을 발견했다. 들어가기 전부터 느낌이 왔다.
“이곳은 진짜다.”
문을 열자마자 확신했다.
인테리어는 완벽히 내 취향이었고, 흘러나오는 음악은 잔잔한 재즈와 프렌치 팝이었다.
마치 내가 파리의 작은 골목 안, 단골 카페에 들어온 편안한 기분이었다.
바닐라 라떼 디카페인을 시켰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적당히 달고, 고소하면서도 맛이 깊었다. 가격도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모든 게 좋았다. 분위기, 음악, 맛,
물론 땅콩 크림 라떼가 없는게 무척 아쉬웠지만 말이다.
‘오늘부터 이곳이 나의 아지트야.’ 나는 단숨에 단골이 될 것을 예감했다.

새로운 단골카페에서의 만족과 행복을 느끼며 커피를 마시던중에 뜬금없이 문득 예전 단골 카페가 떠올랐다.
그리고 뜬금없이 분석을 시작했다.
"그래 그곳은 장사가 안될 수밖에 없어. 맛과 태도, 공간의 온도 모두가 흐트러졌으니까."
하지만 사장님은 장사가 안되서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어 하시겠지?
그럼에도 안되는 이유를 사장님이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누군가 이야기한다고 커피 맛이 갑자기
뛰어나 지는 건 쉽지 않다. 또 인테리어나 무드가 예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러한 부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마치 '손맛' 같은 게 아닐까?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본인 만의
노하우이자 분위기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안쪽에 있지만, 모두가 알지만 안쪽에 있는 사람만 모른다.
사장님은 손님이 떠나는 이유를 몰랐고, 어쩌면 나도 내가 하는 사업이 무너지는 이유를 몰랐다.
결국 ‘모른다’는 게 가장 무서운 징조였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나도 어쩌면 그 사장님과
내 모습이 같다는 걸 알아버렸다.
커피 한 잔 마시러 왔다가, ‘잘되는 커피숍 안되는 커피숍의 차이’를 분석하고 앉아 있는 나.
지가 무슨 멘킨지 전문 경영 컨설턴트도 아닌주제에 꼴깝을 떨었다...
참, 생뚱맞은 사람이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게 나쁘진 않았다.
그 덕분에 오늘 하루가 조금 더 맛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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