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가 오늘 찍였다.
사실 그 기나긴 시간 속에 있을 때는 자주 힘들고 괴로웠다. 그리고 하루하루 버티듯
지나온 날들도 많았다.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과 지겨움, 그리고 성적에 대한
압박과 사람 관리문제에서 오는 어려움 등 무언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빨리 갈아입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날이 되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른 마음이 찾아왔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했고, 사랑받고 있었던 사람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많은 부모님들께서 아쉬움 가득한 문자를 보내주셨고 어떤 분들은 직접 찾아와 케이크와
음료를 건네주셨다. 아이들은 나 몰래 케이크를 준비해 작은 은퇴식을 열어주었다.
이미 학원을 떠난 학생들까지 총출동해 나를 보러 와주었다.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순간들의 장면 하나 하나에서 "아 내가 인생을 헛되이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사실을
가슴시리게 느꼈다.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 올랐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구나.’ 마지막까지 이렇게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응원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이 심하게 아려왔다.

그런데 왜 이런 몽글하고 아쉽고 애잔한 기분이 드는가?
과연 나는 앞으로의 삶에서도 이런 사랑과 감사의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공간을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인생에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래서 지금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아쉽고, 아련하고, 섭섭하고 텅비어버린것 같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마음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감정이야말로 내가 20년을 진심으로 살아냈다는 증거라는 사실이다.
이 감정은 후회, 실패가 아니라 어쩌면 학원은 ‘일터’가 아니라, 어떨때는 속썩이고 짜증나게
했지만, 굳이 말 안 해도 통하던 아이들과의 끈끈한 관계, 나의 청춘 시절을 모두 함께하며
성장하고 함께 자라던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던 공간과 존재들 아마도 이들은 나에게
'오래된 친구들'이자 '벗'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 감정의 이름은...
그동안 잘 살아낸 시간들을 떠나보낼 때 생기는 뿌듯함과 아쉬움, 슬픔, 감동
‘삶의 한 계절이 끝났을 때의 슬픔’ 일까?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이 끝나지 않았는데 헤어지는 감정’이랄까?
매일 불리던 또 부르던 이름들, 오늘도 아이들의 하루에 좋은 영향을 줬다”는 느낌,
책임감과 보람들, 자부심 등 이런 20년 동안 나를 규정하던 역할 전부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며 커다란 구멍이 생긴 느낌이다. 그래서 아픈 것일까? 20년 동안 해온 나의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그동안 나와 마주한 수천 명의 아이들과의 관계 부모님들과의
신뢰 ‘선생이자 원장으로 존재하던 나’라는 정체성 이 모든것들이 하나의 세계였다.


마지막 날 내가 느낀 복잡한 감정은 아마도 직업을 잃어서가 아니라, 소중한 관계가
끝났기 때문에 오는 슬픔인것 같다. 정신없고 바쁜 하루를 모두 마무리하고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고마움에 문자를 한명 한명에게 보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 내가 사실은 정말로 나의 일을 사랑하고 좋아했었던거구나!
예쁘고 소중한 너희들을 평생 기억할께... 고맙고 사랑한다. 언제나 행복하고 건강해라.